화요일에 목이 좀 간질간질하더니, 목요일쯤 됐을 때는 완전히 누워버렸어요. 머리는 지끈거리고, 코는 줄줄 흐르고.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아파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거든요. 약국을 가야 하나, 병원을 가야 하나, 아니면 그냥 버텨야 하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냥 약국 가면 됐어요.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쉬웠고요.
초록 십자 표시가 보이면 그게 약국이에요
한국 길거리 걷다 보면 초록색 십자 마크가 정말 어디서나 보이잖아요. 지하철 출구 옆, 동네 골목 안, 병원 건물 1층. 그게 다 약국이에요. 솔직히 편의점만큼 많은 것 같기도 해요.
약국의 첫 번째 특징은, 약이 선반에 진열돼 있지 않다는 거예요. 마트처럼 들어가서 집어드는 구조가 아니라 카운터에서 직접 물어보는 방식이에요. 처음엔 이게 좀 당황스러울 수 있는데, 약사분들이 원래 이 상황에 익숙해서 의외로 쉽게 통해요. 특히 서울, 대학가나 병원 근처라면 더.
병원부터 가야 할까요, 약국부터 가야 할까요?
가벼운 감기나 소화 불량이면 약국으로 직행해도 괜찮아요. 그냥 일반의약품 사면 되거든요. 근데 좀 심하다 싶거나, 이틀 지나도 안 낫겠다 싶으면 병원(내과, 이비인후과)에 먼저 가는 게 훨씬 나아요.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분들이 제일 놀라는 게 이 부분인데, 병원+약국 과정이 진짜 빨리 끝나요. 병원 가서 진료 받고, 바로 옆 약국에서 약 받아서 나오는 데 30분도 안 걸리는 경우가 많아요. 건강보험 있으면 진료비+항생제 합쳐서 만 원 이하로 해결되기도 하고요. 건강보험 없는 관광객도 진료비 1만~2만 5천 원, 약값 1만 5천~3만 원 수준이에요. 다른 나라 기준으로 생각하면 엄청 저렴한 편이고요.
한국은 2000년부터 의약분업을 하고 있어요. 의사가 처방하고 약사가 조제하는 구조가 법으로 분리돼 있거든요. 그래서 항생제, 수면제, 피임약, 혈압약 같은 전문의약품은 처방전 없이는 못 사요. 약국에서 처방전 드리면 바로 조제해주는데 보통 몇 분이면 돼요. 외국인등록증(ARC) 있는 분은 건강보험 적용받을 때 필요하니까 챙겨가세요.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것들
제가 그 목요일에 약국에서 산 건 판피린이었어요. 한국 약국에서 오래된 감기약인데, 약사분이 제가 감기라고 하니까 바로 건네주셨어요. 팩 단위로 3천~6천 원 정도 해요. 효과는 적당히 있어요.
두통이나 열이 있을 때는 타이레놀이나 부루펜(이부프로펜) 찾으면 돼요. 처방전 필요 없이 카운터에서 그냥 살 수 있어요. 한국에는 게보린이라는 약도 있는데, 아세트아미노펜+이부프로펜+카페인 조합이라 두통에 진짜 잘 듣는다는 분들 많더라고요. 타이레놀 20정 기준으로 3천~7천 원 사이예요.
소화 쪽으로 문제가 있을 때는 까스활명수 아시죠? 작은 갈색 유리병에 든 그거요. 약국은 물론이고 편의점에서도 파는데, 비위가 약한 분들은 맛이 좀 낯설 수 있어요. 한 병에 5백~2천 원 정도예요. 속이 쓰릴 때는 겔포스, 소화 효소가 필요하면 훼스탈, 설사에는 정로환이 자주 추천돼요.
알레르기가 있는 외국인분들한테는 좀 놀라운 사실인데, 지르텍(세티리진)이랑 알레그라(펙소페나딘)가 한국에서는 일반의약품이에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처방받거나 처방전 없이 고가로 사야 하는 약들이 여기선 약국 카운터에서 그냥 살 수 있어요.
피부 쪽으로는 후시딘이랑 마데카솔이 약국 대표 제품이에요. 후시딘은 항생제 연고인데, 외국에서는 처방전이 필요한 나라도 많아요. 한국에서는 일반의약품이고요. 마데카솔은 센텔라 성분이 들어간 상처 크림인데, 8천~1만 5천 원 정도예요. 이거 사러 한국 오는 외국인도 있다는 게 과장이 아니에요.
약사님과 말이 안 통할 때
근데 약국 가서 뭘 어떻게 말하냐고요. 솔직히 말 많이 안 해도 돼요.
"감기약 주세요", "진통제 주세요" — 이 두 마디면 대부분 해결돼요. 증상을 말할 수 있으면 더 좋은데, 두통은 두통, 열은 열, 기침은 기침, 설사는 설사, 이 단어들만 알아도 돼요. 발음이 완벽할 필요도 없고요. 그냥 해보면 통해요. 안 되면 스마트폰에 한국어로 쳐서 보여드리면 되고요.
약사분이 제일 많이 물어보는 게 "언제부터요?"예요. 며칠 됐냐는 건데, 손가락으로 숫자 표시하면 되거든요. 어렵지 않아요.
약봉지나 패키지 읽을 때는 구글 번역 카메라 기능이 정말 유용해요. 완벽하진 않지만 용법 용량 정도는 파악이 돼요.
아, 그리고 한국 일반의약품은 대체로 효능이 순한 편이에요. 진짜로 아프다 싶으면 약국 OTC에만 의존하지 말고 병원 가는 게 맞아요. 빠르고, 싸고, 그냥 가면 되거든요.
약국에서 의외로 살 수 있는 것들
약 말고도 KF94 마스크, 피부 진정 패치(하이드로콜로이드 패치, 일명 패임 패치), 멜라토닌, 멀미약 키미테도 다 있어요. 피부 진정 패치는 2천~5천 원 수준이라 해외에서 비싸게 사던 분들은 진짜 감동받아요.
그리고 올리브영 아시죠? 약국은 아니지만 지르텍이나 기본 감기약, 피부 제품 등 일반의약품 일부를 취급해요. 영업시간도 긴 편이라 급할 때 대안이 될 수 있어요. 근데 처방전 조제는 안 되니까, 처방전이 있으면 약국으로 가셔야 해요.
명동이나 관광지 약국보다 제주도 약국이 같은 제품이 더 싸다는 얘기도 있어요. 관광지 프리미엄 같은 게 있는 것 같더라고요.
휴일이나 늦은 밤에 약국이 필요할 때
약국은 대부분 낮 시간에만 운영해요. 일요일 저녁에 갑자기 아프면 난감할 수 있는데, 이럴 때는 e-gen.or.kr에서 근처 문 연 약국이나 당번 의료기관을 찾을 수 있어요. 모바일에서도 잘 돼요. pharm114.or.kr도 있는데 이쪽은 PC 환경이 훨씬 편해요. 핸드폰에 e-gen 북마크 해두는 거 추천해요.
한국에 오기 전에 의료 관련해서 걱정 많이 했는데, 막상 살아보니까 오히려 한국이 더 편할 때가 많아요. 빠르고, 저렴하고, 약국도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처음 한 번만 가보면 다음부터는 별거 아니에요.
건강보험이 있다면 꼭 적용받으세요. 진료비가 확 달라져요. 보험이 없어도 한국 의료비는 부담 없는 편이니 아프면 그냥 가세요. 빨리 나으시길 바라요.
